7월 1일부로 석사를 마쳤다.
아이둘을 데리고 뭔짓을 하는것인지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논문까지 무사히 마쳤다. 이 나이에 창피해서 별로 알리지도 않았다.
친구는 오히려 동네방네 소문내야지 뭐가 창피하냐고.. 했지만..
석사 졸업생 평균연령이 25-26세이다..
애들 둘 고생시키면서 이까짓걸 왜 해야했는지 스스로에게 창피했다.
다른 엄마들은 애들을 위해 오히려 모든 걸 포기하는데.. 난 왜 이걸 했어야 했는지..
아마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아주 솔직하게 나자신을 스스로 가루날리도록 씹어보자면..
첫째는.. 고딩때 트라우마 때문에.. 그걸 극복해야 할 거 같았다.
(고딩때 공부못한 사람이 어디있겠냐만은.. 아주 잘했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 이후로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우울함에서 십여년을 벗어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우리나라 입시교육의 폐해라 하겠지만..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고.. 그땐 선지원후시험에 단 한번의 기회 뿐이었던 옛날 옛적이라.. 단 배팅과 단 한번의 기회로 모든 게 끝이었다.) 이 트라우마가 굉장히 컸다.
둘째는.. 첫째와 같은 맥락이지만.. 그 이후로 제대로 공부를 하지를 못했다.. 한마디로 성실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막 나갔다는 건 아니지만.. 세상은 흑백은 아니다.. 성실하지 못해도 쭉 갈 길을 가긴 했다. 하지만 대충 갔다.
너무 당연하고 너무 많이 떠드는 얘기지만 정말로 공부를 잘한다는 건 머리가 좋다는 말은 아니다.. 그건 백프로 성실성인 것 같다. 이 성실성이 공부에만 중요한 건 아니다.. 자신이 안다. 성실하지 않았을 때의 그 허무함을.. 그냥 스스로를 속일 뿐이다.. 아닌척하고..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그 허무함.. 뭘 해도 꽉찬 느낌이 오지 않는 그 공허함.. 성실하지 않으니까.. 남들보기에는 성실해보여도.. 요령좋은 아이들은 그걸 드러나지 않게 하는 방법도 안다.. 그리고 순간집중력으로 결과를 비슷하게 만들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은 진심으로 안다. 순간집중력으로 메운 것과 꾸준히 성실하게 체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자기자신 내부에 큰 차이인지를.. 이건 공부를 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성실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공허감은 일상생활을 지배한다.. 뭔가 배가 든든하게 차 있는 기분이 아니라..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느낌..
성실성은 따분하게 심히 반복적인 일조차도 mastery를 할 수 있도록 꾸준히 스스로 되돌아오는 게 없어도 끝까지 하는 신체적훈련이다. 두뇌도 신체의 일부이고 공부는 두뇌만이 하는 건 아니다. 손도 움직이고 눈도 움직이고 심지어 등도 따라줘야 하고 다리도 저리고 엉덩이도 배긴다.. 이 모든 신체가 견디어줘야 한다..고딩때의 이 성실성이 사라졌었다.. 남들은 모르겠지만.. 뭔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하고 결과를 만들어냈을때 느껴지는 그 꽉찬 느낌.. 이건 든든한 자신감과 배짱으로 쌓이게 된다. 나라는 인간의 내부 stability 라고 하면 될려나..흔들리지 않은 중심같은 게 생기는 거 같다.. 미안하다. 영어 잘 하지도 못하면서 영어느낌이 더 와 닿는 건 뭐 조화인지 모르겠다.. 이 중심이 아주 오랫동안 사라졌었다.. (물론 지금도 뭐 중심 꽉 선거는 아니다.. 하지만 뭘 해도 불안한 거 같은 느낌.. 허공에 탑쌓는 거 같은 느낌.. 그게 사라지지 않았다.. )
셋째는..결국 같은 얘기지만.. 나 자신과 내 부모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특히 덴맠1기를 끝내고 다시 들어갔을때는.. 덴맠경력 잘 내세워서 좋은 직장 가서 서울서 도시생활 누리며 살리라 정말 그 생각이었다.. 뭐 젤로 크게 상상한거는.. 외국계가자..정도.. 것두 아이비리그 출신들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것 같아.. 그냥 어디든 서울에서 안정된 곳으로만 가자는 주의였다. 원래는 덴맠서 2004년에 석사를 들어갔었다. 덴맠1기 직장생활 중에..
그와중에 무슨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었고.. 한국서 학부때 받은 장학금으로 묶여있던 옵션 5년이 끝이나면 어렴풋이 석사를 하려고 했었고.. 2004년 옵션이 마무리되었을때 그냥 덴맠서 내보기나 하자 하는 기분으로 석사을 냈다가 합격을 했었다.. 그리고는 3개월만에 한국행..
집안에 여러가지 큰 변화가 있었기에.. 또 이곳 회사도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고.. 무엇보다.. 그때 한국을 가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일을 앞으로 평생 댐으로도 못 막을 거 같은 절박함이 있었고..
석사를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었고.. 그냥 한번 여기서 내었다 덜컹 붙은 거였다.. 그리고 한국을 가야할 이유가 두가지 넘게 생겼었다.. 변명이지만 돌아가야했다.. 결과론적으로는 잘한 결정이었다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보면 다시 그 상황이 와도 똑같이 했을 거다...
하지만 나에게 빚이 남은 기분이었다.. 매년 석사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이 떠오르고 했다..
그리고.. 한국에 살거라고 말씀드렸던 것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나올일이 생겼지만.. 석사라도 따서 미안함을 덮고 싶었다.. 석사라도 따면 그래도 명분은 설 수 있을 거 같아서.. 결국은 다 핑계지만..
넷째는..아이들이 자랐을때 대학을 가라고 설득하고 싶어서.. 여긴 대학이 필수가 아니다..
대학가는 수도 너무 적다.. 우리 애들이 대학을 갈지 모르겠다.. 안가도 된다는 목소리가 너무 크다.. 안가도 먹고사는데는 지장없다.. 하지만 솔직히 느낀다.. 물질적으로는 지장없지만 교육은 엄청난 차이를 사람에게 부여한다.. 물질적으로 의사들과 비서들이 같은 동네에서 같은 크기의 집을 짓고 사는 것이 당연시 되고 많이들 그렇게 하고 있지만 대화를 나눠보면 안다..교육의 차이가.. 그들의 세상 보는 눈의 넓이와 깊이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이 눈의 깊이가 삶을 살아가는 데는 여기서는 별로 써먹을데가 없는 건 사실이다.. 교수나 수리공나 같은 동네서 서로 이웃하며 서로 존중하며 섞여살고 있는게 여기다 맞다.. 하지만.. 보았다.. 지난 8년동안 극우보수가 집권했을때 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교육을 덜 받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극우보수가 재집권이 가능했던 것도.. 그 이후 생겨난 덴맠의 변화들도.. 난 극우진보도 싫어한다.. 정치적으로 공평하기 이딴거 엄청 싫어한다. 무조건 인권 들이대는 것도 엄청 싫어한다.. 하지만 최소한 자기 생각이나 다른 이들의 생각에 어느정도의 브레이크 능력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차이는 이 브레이크 능력을 결정짓는다.. 난 그걸 덴맠2기때 뼈저리게 느꼈다.. 브레이크 없는 극우보수와 극우진보가 군중심리에 자정능력없이 휩쓸리는것이 이 21세기에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자정능력은 교육과정에서 스스로 생각해보는 훈련을 통해서만 생길 수 잇는 것 같다.. 우리나라 주입식 교육이라 비판하지만.. 우리나라가 그나마 그 짧은 기간에 별일 다겪으며그렇게라도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건 난 그 주입식 교육속에서도 그 주입식으로라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교육을 통해서 가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특히 청소년기 이후에 교육은 더 중요한거 같다.. 대학은 지식습득을 떠나서 사회에 내던져져서 군중에 휩쓸리기 전에 최소한 나를 조금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단체속에서 나를 다듬을 수 있는 최소한의 시스템화된 기회이다. 난 이걸 우리 아이들이 거치기를 바란다.. 나스스로 이곳 교육환경의 경험이 없기에 석사라도 해서 스스로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야.. 만에 하나 우리아이들이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했을때 부모로서 최소한의 경험치에서 설명이라도 해줘서 심사숙고해 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밑받침을 만들어두기 위해서.. 그래서 아이둘을 지금 고생시키더라도 석사를 해야할 거 같았다.. 그리고 석사를 거쳐서 조금 고개를 숙이는 법을 배우고 싶기도 했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지 않는가.. 그 위에 뭐가 있을까 들여다 보고 싶기도 했다.. 좀 웃긴 말로 들리지만 더 성숙한 인간들을 (대학간 인간만이 성숙한 건 아니다..하지만 짧은 기간에 훨씬 더 많은 실패와 비판을 통해서 스스로를 좀 단련한 인간들을 / 물론 그 과정속에서도 오만만 깊어지는 안그런 인간도 많다.. 하지만 좀 더 노력하는 인간들을 더 만나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는 만족한다.. 더 만났다.. 그리고 좋은 자극이 되었고.. 고개가 숙여지기도 했다....
쓰고보니 웃긴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왜 이리 구구절절 설명을 할까..
이건 나 자신에게 하는 설명이다.. 잊지않기위해서.. 생활에 휩쓸리면 원래의 의도는 항상 퇴색된다. 논문이 풀리지 않고 한참 힘들때 그만두고 싶었다.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그래도 결과를 봐야 할 거 같았다.. 그래야 나중에 설명을 해줄 수 있지.. 결과적으로 113 페이지 논문을 완료했고.. 소프트웨어까지 완성을 시켰으니 밤잠 못자고 피곤에 쩔었던 나나 그 피곤한 나를 상대해준 우리 애들이나 너무 고생했다..
애들이 고등학생되면 의논상대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전개된다 과정들을 설명해 줄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애들이 결정을 하는데 도와줄 수 있을 거 같다.. 그래도 본인이 원하는 쪽으로 들어주겠다고 마음은 먹고 있고.. 정말 이 네번째 이유가 세번째와 함께 가장 컸다. 내가 무슨 석사를 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한 것도 아니고... 정말 이 이유를 위해서 우리 애들에게 설명해주기 위해 부모인 나도 안해본 일을 하기 싫다는 애들에게 하라고 할 수는 없을 거 같아서.. 뭐 쓰고 보니 별것도 아닌데 엄청 대단한 거 같다.. 그래도 혼자 힘으로 했으니 그건 나스스로 토닥하고 싶다.. 그리고 중요한 아주 단편적으로 그 성실성의 느낌을 다시 맛 본 기분이다.. 아주 오랫동안 이 기분을 못 느꼈는데.. 뭔가 배가 좀 차게 되는 것 같은 느낌.. 이건 충전된 느낌이다..얼마지나지 않아 사라지겠지만.. 이 느낌을 다시 조금 맛볼 수 있어서 기쁘다..
그외.. 단상.. 석사 논문을 쓰면서 느낀점.. (논문 들어가기전 필수적으로 다 거쳐야하는 각 과목 코스웤과 각 과목별 플젝은 어차피 무조건 팀플젝이었으니 뭐 나도 팀플젝할때 젊은 학생들 서로 열심히 하는데 사공이 너무 많은 거 같아 뒷짐지고 있었던 적도 많았지만....논문은 그래도 1인 1논문일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DK학생들은 논문을 둘, 심지어 셋이서 같이 쓰고 (심지어 100페이지도 안되는 양을 두세명이 공동으로 쓰고) 소프트웨어를 따로 만들지도 않는 애들이 수두룩 했다.
내 자랑이 아니라 솔직히 그게 좀 어이가 없어서.. 열팀이 석사논문을 반년에 걸쳐 작업을 한다면 거의 8팀이 두세명이서 하는 팀작업이었다..
이게 허용되는 것도 신기했지만 공대 논문에 이론만 달랑 것두 팀작업에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되는게 신기했다.
정말 두명까지는 어떻게 이해를 하겠는데 세명도 허용한다는 것은 좀 의아했다. (그런 논문팀은 그 중에 한명은 어쩔 수 없이 freeloader 인 걸 목격하기도 하고.... 일안하고 그냥 거저 먹는.. 근데 이런 거저 먹는 애들이 학점은 또 잘받는다.. 그 세명이서 같이 쓰는 논문팀원 둘이 밤을 하얗게 새워가며 리서치하고 읽고 분석하고 의논하고 방향제시하고 골머리싸메고 문장 만들어서 페이지 채워나갈때 옆에서 게임하고 있는 걸 여러번 목격한 나로서는..그리고 혼자서 머리 터지게 허리 끊어지게 애들 눈빠지게 하도록 고생한 나로서는.. 좀 많이 어이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열심히 논문 리서치, 글쓰기, 소프트웨어 작업에 매달려 열심히 한 애들은 정말 막판에 뻗는다.. 그래서 석사 디펜스 시험때 이론쪽을 대충하게 되는데..(기력이 다 소진되어버려서.) 다른 애들이 열심히 일할때 놀기만 한 애는 다른 애들이 일끝내고 요약 설명해주는 거 받아먹기나 하고 이론만 준비해서 성적은 더 잘나오더라는.. 이건 정말 충격이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 하나... 만약 내가 만에 하나 운이 엄청 좋아서 어느 회사에 소프트웨어팀 팀장이 된다면 반드시 DK애들에게 물어보리라 석사 논문 몇명이서 썼냐고.. 세명이서 썼다고 하면 뽑고 싶지 않을 거 같다. 에효.. 이건 나만 알아도 될 일이나.. 그냥 쓰고 본다. 나중에 지울지도 모르겠다.
Friday, July 24, 2015
Friday, June 21, 2013
Information
아주 오랜만에 내 블로그에 들어왔다.
요즘 쬐금 바쁘다. 한 1년반 정도 더 바쁠 것 같다.
그냥 우리 아이들이 자라고 있기에 교육도 생각해 본다.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곳을 생각해보다 이곳이 가장 적합한지라 여기에 링크를 올려두기로. 나중에 생각날때 다시 들어와서 상기할 수 있게끔.
난 우리 아이들이 아이비리그에 갈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심져 바로 옆 영국 탑대학도.. (덴맠과 영국은 일본과 한국 거리라고 해도 완전 틀린말은 아니다. 쬐금 더 멀다. 일본과 한국거리에 비해. 그래도 여전히 바로 옆..) 아무튼 난 멀리 보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냥 우리가 그시기에 어디에 있건 우리가 있는 곳에서 편하고 안정적으로 사는게 내가 바라는 가장 최대치이다. 그래도 적성에 맞는 걸 찾고 그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도록 도와는 주고 싶기에 엄마로서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고 이런 저런 걸 보고 듣고 익혀보고자 한다. 그럼 아이들이 관심있어 하는 부분을 알아챌 수는 있는 센스는 가질 수 있을테니.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우둔한 엄마가 될까봐 그게 나스스로 나스스로에게 가장 염려스러운 부분일뿐.
그래서 이런 저런 정보 생각날때 마다 혹은 우연찮게 들을 때 여기에 링크해두련다.
오늘 이런 저런 생각하다..이제 곧 휴가철도 다가오고.. 그래서 여행은 매년 휴가 때 일주일정도는 어디든 가려고 하는 것이고 십여년 뒤에는 아이들이 딱히 놀이공원은 즐거워 하지 않을테니,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다...갑자기 그냥 아이들이 어느정도 크면 여름 휴가로 여기저기 유명한 대학도시를 여행다녀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물론 이건 십여년뒤 이야기) 어디가 유명한 대학도시인가 생각해보다. 또 갑자기 내가 어려서 봤던 EBS, 세계의 교육, 그 현장을 가다. 다큐가 생각나길래 구글링을 해봤더니... 여전히 그 비슷한 프로가 EBS에 있더라는....
http://www.youtube.com/watch?v=EnLr3zTsnQE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episodic&v=XJFrMuvTPUo&NR=1
항상 바라는 건 우둔한 엄마가 되지 말자는 것.. 이것만 잘해도 삼분의 일은 잘 할 수 있을 거 같다. 바쁜 와중에.. 오랜만 블로깅..
요즘 쬐금 바쁘다. 한 1년반 정도 더 바쁠 것 같다.
그냥 우리 아이들이 자라고 있기에 교육도 생각해 본다.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곳을 생각해보다 이곳이 가장 적합한지라 여기에 링크를 올려두기로. 나중에 생각날때 다시 들어와서 상기할 수 있게끔.
난 우리 아이들이 아이비리그에 갈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심져 바로 옆 영국 탑대학도.. (덴맠과 영국은 일본과 한국 거리라고 해도 완전 틀린말은 아니다. 쬐금 더 멀다. 일본과 한국거리에 비해. 그래도 여전히 바로 옆..) 아무튼 난 멀리 보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냥 우리가 그시기에 어디에 있건 우리가 있는 곳에서 편하고 안정적으로 사는게 내가 바라는 가장 최대치이다. 그래도 적성에 맞는 걸 찾고 그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도록 도와는 주고 싶기에 엄마로서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고 이런 저런 걸 보고 듣고 익혀보고자 한다. 그럼 아이들이 관심있어 하는 부분을 알아챌 수는 있는 센스는 가질 수 있을테니.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우둔한 엄마가 될까봐 그게 나스스로 나스스로에게 가장 염려스러운 부분일뿐.
그래서 이런 저런 정보 생각날때 마다 혹은 우연찮게 들을 때 여기에 링크해두련다.
오늘 이런 저런 생각하다..이제 곧 휴가철도 다가오고.. 그래서 여행은 매년 휴가 때 일주일정도는 어디든 가려고 하는 것이고 십여년 뒤에는 아이들이 딱히 놀이공원은 즐거워 하지 않을테니,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다...갑자기 그냥 아이들이 어느정도 크면 여름 휴가로 여기저기 유명한 대학도시를 여행다녀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물론 이건 십여년뒤 이야기) 어디가 유명한 대학도시인가 생각해보다. 또 갑자기 내가 어려서 봤던 EBS, 세계의 교육, 그 현장을 가다. 다큐가 생각나길래 구글링을 해봤더니... 여전히 그 비슷한 프로가 EBS에 있더라는....
http://www.youtube.com/watch?v=EnLr3zTsnQE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episodic&v=XJFrMuvTPUo&NR=1
항상 바라는 건 우둔한 엄마가 되지 말자는 것.. 이것만 잘해도 삼분의 일은 잘 할 수 있을 거 같다. 바쁜 와중에.. 오랜만 블로깅..
Monday, August 06, 2012
05.August.2012
여름휴가가 끝이났다. 우리 미셀은 마지막을 이웃인카트리나(8살)와 함께 놀았고 저녁준비하는 동안 신랑이 애들를 보겠지 했더니 (신랑은 카트리나랑 둘이 그 집에서 놀겠지 싶어) 마크랑 집에 잠시 와있는사이 () 카트리나가 놀이터가자고 해서 미셀이 따라갔다가 엄청 멀리 갔다고 ( 멀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안 가 던곳 ) 카트리나아빠랑 신랑이 찾으러 온동네 놀이터를 다 뒤져서 겨우 찾았음. 이제 겨우 4살 10개월인 미셀은 언니도 오빠도 없다보니 이웃집 카트리나가 놀아주면 엄청 좋아한다. 그런 카트리나가 놀이터가서 놀자 하니 당근 좋아라 하면 둘이 자전거 타고 신나게 쫓아감. 물론 옆 놀이터에 가는거라 생각한듯(부모도 그랬고) 암튼 잘 놀긴했지만 찾아돌아다니느라 어리둥절 . (걱정은 별로 되지 않음. 카트리나가 혼자서도 학교를 자전거로 등교하고 동네를 잘 알아서). 암튼 찾은 후에 집에 아빠랑 들어서며 미셀하는 말 ' 엄마 우리 굉장히 먼 놀이터에 갔었다. 너무 멀어서 나 걱정되기 시작했어. 엄마도 걱정했어?' (이때 열심히 수긍해줌. ) ' 배도 너무 고팠다' (글고 안아준) 우리 애가 참 심성 바르고 좋은아이구나 하는걸 (물론 아주 얌전하다는 얘기는 아님. 생각이 바른아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종종 느끼는데 오늘도 그랬다. 나름 너무멀리가는거 같아 걱정되었고 한참 어른같은 8살 카트리나가 오랜만에 놀아주는데 집에 가자고 할수도 없고 그 어린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물론 화나면 소리 빽빽 지르고 마크가 자기 맘대로 안되면 손목을 아프도록 꽉 잡아서 심술을 내기도 하고 엄마아빠가 자기 해달라는 거 안 해주면 발을 동동 구르고 징징 거리기도 하고 결코 얌전하지않아서 마구 뛰어다니고 급하고 이리 오라면 저리 가고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 마크를 열심히 챙겨서 같이 잘 놀아주고 엄마 아빠 생각도 많이 해 주고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리고 5 살이 가까워지는 미셀을 보면서 우리 애가 잘 자라고 있구나 하는걸 꽤 많이 느낀다. 감사하다
Friday, July 06, 2012
20년.
오늘 아이들이 대학원까지 간다고 가정하고 쭉 나열해봤더니 딱 20년 걸린다 그리고 그속에 할일이 태산같이 나열이 되었다...아이들이 자라면서 기억해야 할 스케줄들이 산더미 같다. iphone, ipad 에 아날로그 캘런더에 벽붙박이 캘런더를 부엌에 달아놓고 기록에 기록을 거듭해도 4명의 스케줄을 모두 다 기억하는 거는 거의 인간 능력의 한계인거 같다.
5년이 금방가는 걸 보면 20년도 또 정신없이 지날거 같긴한다. 그속에 나열된 일들을 보니 과연 내 능력이 이만큼 뒷받침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느껴진다.
초등하교부터 중학교까지는 연결된 교육시스템이라 일단 학교가 한군데 줄긴하지만 그속에 각종 수업외활동 (대부분 스포츠) 도 엄청 많고 거기에 여름방학은 한 달반이다. (대신 겨울방학이 딱 2주뿐이다. 결국 플러스 마이너스하면 한국과 같다. 항상 그렇더라는 그저 기간이 다를뿐.)
아이들의 학교 여름방학은 한달 반인데 반해 부모들의 휴가는 max.3주다. 절반밖에 안되고 나머지 3주는 부모의 재량껏 열심히 학교의 공백을 메꾸어야 한다. 결국 이곳 엄마들도 모두 친정 바로 옆에 산다. 친정의 도움없이는 아주 심각히 힘들다. 결국 난..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 겁난다.
5년이 금방가는 걸 보면 20년도 또 정신없이 지날거 같긴한다. 그속에 나열된 일들을 보니 과연 내 능력이 이만큼 뒷받침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느껴진다.
초등하교부터 중학교까지는 연결된 교육시스템이라 일단 학교가 한군데 줄긴하지만 그속에 각종 수업외활동 (대부분 스포츠) 도 엄청 많고 거기에 여름방학은 한 달반이다. (대신 겨울방학이 딱 2주뿐이다. 결국 플러스 마이너스하면 한국과 같다. 항상 그렇더라는 그저 기간이 다를뿐.)
아이들의 학교 여름방학은 한달 반인데 반해 부모들의 휴가는 max.3주다. 절반밖에 안되고 나머지 3주는 부모의 재량껏 열심히 학교의 공백을 메꾸어야 한다. 결국 이곳 엄마들도 모두 친정 바로 옆에 산다. 친정의 도움없이는 아주 심각히 힘들다. 결국 난..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 겁난다.
Thursday, July 05, 2012
[3_July_2012] Mark birthday party with kindergarden
마크의 만 3세 생일이 7월 19일이다. 만3세! 7월 19일이면 3년이 지난거다. 이제 공식적으로 아동기. ㅋㅋㅋ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여름 휴가철이고 유치원도 휴가모드에 돌입을 하기 때문에 본 생일보다 일찍 생일파티를 해 주었다. 모두들 맞벌이이기 때문에 생일파티를 유치원에 음식보내서 거기서 대충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많은 엄마들이 하루 휴가를 내고 집으로 초대해서 생일 파티를 해주기 때문에 나도 항상 집으로 초대를 해서 생일 파티를 해준다.
미셀때는 같은 반 유치원 아이들을 초대했지만 마크는 아직 많이 어려서 큰애들이 오면 자기 생일파티에 넘 어수선 할 거 같아 같은해에 태어난 아이들을 초대했다. 10명정도에 선생님 두명이렇게 오전에 집으로 초대해서 놀고 음식먹이고 반나절 생일 파티를 해주었다.
아직 어려서 표현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오늘은 자기가 주인공이란걸 잘 알고 있었고 꽤 즐거워 했다. 케잌먹기전에 생일 축하 노래를 선생님과 아이들이 불러주는데 다소곳이 앉아서 열심히 듣고 있더라는.. 만3세들이라 역시 다들 말도 잘듣고 어찌나 귀엽던지.
점심 먹이고 디저트로 케잌 다같이 먹고 마당에서 또 열심히 놀다가 다들 손꼭잡고 유치원으로 돌아가는거 마중한다고 집앞에서 마크랑 같이 빠이빠이 내일봐요 하며 손 흔들고 서 있는데 마크가 하는 말. / 엄마, 모두 나 보러 왔어. :) (Mor, alle kommer og besøger mig ) / 흐뭇하게 이렇게 말하는 거다. 그래서 이뻐서 볼에 뽀뽀를 해 줬더니 자기도 내볼에 뽀뽀를 해 줬다. 만3살이라 아직 아주 어리다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표현을 많이 안할 뿐 모든걸 느끼고 기뻐하고 좋아하고 모든걸 흡수하고 있다는 걸 느낄때가 참 많다. 만3살 축하한다. 우리 둘째. (곧! 7월 19일에 진짜 생일 ㅋㅋ)
미셀때는 같은 반 유치원 아이들을 초대했지만 마크는 아직 많이 어려서 큰애들이 오면 자기 생일파티에 넘 어수선 할 거 같아 같은해에 태어난 아이들을 초대했다. 10명정도에 선생님 두명이렇게 오전에 집으로 초대해서 놀고 음식먹이고 반나절 생일 파티를 해주었다.
아직 어려서 표현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오늘은 자기가 주인공이란걸 잘 알고 있었고 꽤 즐거워 했다. 케잌먹기전에 생일 축하 노래를 선생님과 아이들이 불러주는데 다소곳이 앉아서 열심히 듣고 있더라는.. 만3세들이라 역시 다들 말도 잘듣고 어찌나 귀엽던지.
점심 먹이고 디저트로 케잌 다같이 먹고 마당에서 또 열심히 놀다가 다들 손꼭잡고 유치원으로 돌아가는거 마중한다고 집앞에서 마크랑 같이 빠이빠이 내일봐요 하며 손 흔들고 서 있는데 마크가 하는 말. / 엄마, 모두 나 보러 왔어. :) (Mor, alle kommer og besøger mig ) / 흐뭇하게 이렇게 말하는 거다. 그래서 이뻐서 볼에 뽀뽀를 해 줬더니 자기도 내볼에 뽀뽀를 해 줬다. 만3살이라 아직 아주 어리다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표현을 많이 안할 뿐 모든걸 느끼고 기뻐하고 좋아하고 모든걸 흡수하고 있다는 걸 느낄때가 참 많다. 만3살 축하한다. 우리 둘째. (곧! 7월 19일에 진짜 생일 ㅋㅋ)
Wednesday, May 02, 2012
[1 May 2012] Mark in kindergarden
마크가 유치원에 입학했다. daycare와 함께 운영하는 곳이라 같은곳에서 daycare를 다녔고 미셀도 다니고 있는 곳이라 뭐 새로울것은 없지만 daycare는 아기취급을 그래도 해주는 이제는 공식적으로 아기 시절과는 안녕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배우기 시작하는 시기가 되었다.
유치원 반(혹은 방)으로 들어가는 걸 아직은 별로 내켜하지 않지만 이곳 문화가 항상 천천히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이끄는 문화라서 유치원은 거의 초등학교처럼 거의 의무적이다. 관습적으로 모두 간다.
마크가 유치원에 가고 나니 역시 당연히 만감이 교차한다.ㅋㅋㅋㅋㅋ
엄마로서의 능력은 난 이미 스스로 능력없음을 만천하에 공표하고 다니기에 새로울 것도 없고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순간 순간 드는것도 항상 거의 자동적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 스스로도 자라게 되는데 그렇게 얻은 한가지 결론은 의식적으로라도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 기술적으로 엄마로서 잘해야하는 많은 것들을 타고난 엄마타입은 아니다. 주변에 보면 요리와 집안일과 아이돌보기를 천성으로 타고나서 아주 수월하게 무슨 자동처럼 그것도 전혀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잘하는 엄마들이 아아아ㅏㅇㅇ주 많다. 그런 엄마들을 보면 난 죽었다깨어나도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타고나지를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죄책감에 젖어있고 아이들에게 미안해하기만 하면 오히려 더 나쁜거다.
아이들에게 먼지한톨없는 집과 완벽한 인테리어의 엄마솜씨를 제공할 수 없고 내스스로 재봉틀돌려서 이쁜옷 지어 입히고 할 수는 없지만 난 스스로 아이들에게 다른걸 제공할 수 있다고 믿기로 했다. 요리는 아이들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거기에 난 아이들에게 좀 더 넓은 시야를 제공할 수 있고 엄마의 잡다한 호기심 덕분에 아이들에게도 잡다하게 여러가지를 보여줄 수 있다. 아주 가까운 가족들만 아는 사실이지만 난 그림도 그럭저럭 꽤 그리고, 클래식 음악도 꽤 들으러다니고 거기다 만인이 다 알 듯 운동도 좋아하는 편이고 거기에 공대출신이니 수학과 물리도 가르쳐줄 수 있고..사교성도 좋은 편이고 전체적으로 큰그림을 보고 뭔가를 계획세우고 이끌어나가는 것도 꽤 잘한다..ㅋㅋㅋㅋ 이리 쓰고 보니 왠지 스스로 자기당위하는 느낌이지만... 몇년의 육아를 걸쳐 깨달은 사실은 엄마로서 내게 없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좌절하기 보다는 내가 조금아나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대견해하는 것이 내 스스로를 안정시키고 (그럼으로써 아이들에게 좌절하고 불안해하는 엄마모습을 보이지 않고 ) 정서적인 안정을 줄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라는 걸 깨달았다. 결국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사랑하라는 가장 단순한 진리로 회귀했다. 그모습을 보고 아이들도 별거 아닌거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정서적으로 안정될 테니.. 그리하여 스스로 좋아하는 것들을 지난 몇년의 육아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많이 하기로 했다. 나스스로 나이게 했던 것들.. 이십대때 온전하게 나스스로를 위해서만 했던 것들.. 꽤 많이 오랜시간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즐거움들을 다시 하고 스스로 안정적으로 평화롭고 joyful한 상태가되도록 하기 위해.
영단어중에 joy 아마 이 느낌이 가장 맞을거다. 그 잔잔하고 평화롭고 스며드는 즐거움이 결국 나에게 안정을 주고 진정한 나자신이게 한다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이제 잊지말자.ㅋㅋ
유치원 반(혹은 방)으로 들어가는 걸 아직은 별로 내켜하지 않지만 이곳 문화가 항상 천천히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이끄는 문화라서 유치원은 거의 초등학교처럼 거의 의무적이다. 관습적으로 모두 간다.
마크가 유치원에 가고 나니 역시 당연히 만감이 교차한다.ㅋㅋㅋㅋㅋ
엄마로서의 능력은 난 이미 스스로 능력없음을 만천하에 공표하고 다니기에 새로울 것도 없고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순간 순간 드는것도 항상 거의 자동적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 스스로도 자라게 되는데 그렇게 얻은 한가지 결론은 의식적으로라도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 기술적으로 엄마로서 잘해야하는 많은 것들을 타고난 엄마타입은 아니다. 주변에 보면 요리와 집안일과 아이돌보기를 천성으로 타고나서 아주 수월하게 무슨 자동처럼 그것도 전혀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잘하는 엄마들이 아아아ㅏㅇㅇ주 많다. 그런 엄마들을 보면 난 죽었다깨어나도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타고나지를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죄책감에 젖어있고 아이들에게 미안해하기만 하면 오히려 더 나쁜거다.
아이들에게 먼지한톨없는 집과 완벽한 인테리어의 엄마솜씨를 제공할 수 없고 내스스로 재봉틀돌려서 이쁜옷 지어 입히고 할 수는 없지만 난 스스로 아이들에게 다른걸 제공할 수 있다고 믿기로 했다. 요리는 아이들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거기에 난 아이들에게 좀 더 넓은 시야를 제공할 수 있고 엄마의 잡다한 호기심 덕분에 아이들에게도 잡다하게 여러가지를 보여줄 수 있다. 아주 가까운 가족들만 아는 사실이지만 난 그림도 그럭저럭 꽤 그리고, 클래식 음악도 꽤 들으러다니고 거기다 만인이 다 알 듯 운동도 좋아하는 편이고 거기에 공대출신이니 수학과 물리도 가르쳐줄 수 있고..사교성도 좋은 편이고 전체적으로 큰그림을 보고 뭔가를 계획세우고 이끌어나가는 것도 꽤 잘한다..ㅋㅋㅋㅋ 이리 쓰고 보니 왠지 스스로 자기당위하는 느낌이지만... 몇년의 육아를 걸쳐 깨달은 사실은 엄마로서 내게 없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좌절하기 보다는 내가 조금아나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대견해하는 것이 내 스스로를 안정시키고 (그럼으로써 아이들에게 좌절하고 불안해하는 엄마모습을 보이지 않고 ) 정서적인 안정을 줄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라는 걸 깨달았다. 결국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사랑하라는 가장 단순한 진리로 회귀했다. 그모습을 보고 아이들도 별거 아닌거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정서적으로 안정될 테니.. 그리하여 스스로 좋아하는 것들을 지난 몇년의 육아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많이 하기로 했다. 나스스로 나이게 했던 것들.. 이십대때 온전하게 나스스로를 위해서만 했던 것들.. 꽤 많이 오랜시간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즐거움들을 다시 하고 스스로 안정적으로 평화롭고 joyful한 상태가되도록 하기 위해.
영단어중에 joy 아마 이 느낌이 가장 맞을거다. 그 잔잔하고 평화롭고 스며드는 즐거움이 결국 나에게 안정을 주고 진정한 나자신이게 한다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이제 잊지말자.ㅋㅋ
Friday, April 13, 2012
[12_apr_2012] Jenny's diary
오늘 미셀을 데리러 유치원에 갔더니, 개나리를 내게 주었다. 정원서 놀때 엄마줄려고 꺾어서 자기 사물함에 넣어두었다.. 찡~~ 엄마보자마자 개나리를 건네주면서 이거 엄마한테 주는 선물이야. 하는... 찡~~~ 나보다 훨씬 큰 사랑을 내게 보여주는 우리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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